올해 1월 건설·부동산 부서로 부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는 단연 현장 취재였다. 부동산 분야에서 재개발·재건축 도시정비사업은 늘 화제가 되고 그만큼 작은 기삿거리라도 주목받게 된다. 보도자료나 전화 취재에선 알 수 없었던 주민들의 삶, 필자의 나이보다 더 오래 산 노후 아파트들의 저마다 사정, 재개발·재건축 히스토리를 하나둘씩 배워가는 과정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재개발과 재건축은 공공성에서 큰 차이가 있다. 재개발은 도로와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새로 정비하고 주택을 신축함으로써 주거환경과 도시경관을 재정비하는 사업이다. 공공사업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민간 정비사업인 재건축과 다르다.
재건축은 낡은 아파트나 연립주택지구의 주택 소유자가 조합을 설립해 자율적으로 주택을 허물고 신축하는 사업이다. 둘 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근거하기 때문에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론 차이가 있다. 재개발·재건축사업 둘 다 단계별로 진행되는 심의제도와 주민 간 이해관계 대립 등의 문제로 시간이 오래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합해 통합심의를 하고 보다 빠른 정비사업과 주택공급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방침이다. 현재 서울시가 추진하는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기획)’도 같은 정책의 일환으로 앞으로 이러한 규제 완화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셈이다.
신통기획은 정비계획 수립단계에서 서울시가 공공성과 사업성 간 균형을 이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정비구역 지정까지 빠른 사업 추진을 지원한다. 정비구역 지정까지 걸리는 기간을 통상 5년에서 2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필자는 신통기획을 추진한 여러 현장들을 방문했다. 신통기획을 추진하는 곳은 대부분 주택이 오래돼 낡았으나 사업성이 낮다 보니 도시정비사업이 미뤄지거나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다. 하지만 취재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은 신통기획을 반기지 않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기자의 취재를 환영하는 곳도 있었지만 거부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 주민은 “순조롭게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기사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재건축사업 절차는 입주까지 대략 10단계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기본계획 수립 ▲정비구역 지정 ▲추진위원회 구성 ▲예비 안전진단 및 안전진단 통과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 ▲시공사 선정 ▲관리처분인가 ▲이주와 공사 ▲일반분양 ▲준공 및 조합청산 등이다. 이 산을 다 넘어야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짧으면 7년, 평균 10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는가 싶다가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도 많다. 여러 고비를 넘겨 조합까지 설립했지만, 그 안에서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재개발·재건축은 속도가 관건인데 시간이 지체될수록 사업비 대출이자 등 경제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한다.
재건축 현장보다 더욱 안타까운 곳은 재개발 현장이다. 가장 기억에 남은 재개발 현장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4가 ‘문래4구역’이었다. 지난 5월 이곳에서 만난 당시 문래4구역 재개발사업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위원장(현재 조합장)과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노후 주택가 주민들이 느끼는 삶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서울의 화려한 고층 빌딩 뒤로 가려진 문래4구역은 오래된 철공소가 즐비하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동네임에도 시골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곳은 지난 4월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율 77%를 달성해 조합설립 요건을 충족했다.
조합장은 인터뷰에서 “조합설립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고 같이 일하던 분 중에는 암으로 돌아가신 경우도 있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해당 구역은 조합설립 요건을 달성하기까지 총 13년이 소요됐다.
하지만 13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재개발사업의 끝을 볼 수 없는 상황. 그동안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과 사연이 있었을지 상상할 수가 없다. 과거 20년 넘게 재개발사업만 기다리다가 포기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들의 안타까운 마음에 공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들을 고려할 때 신통기획은 주민의 희망이 되고 있다. 도시정비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단축해주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통기획은 명과 암이 존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통기획의 장점은 빠른 사업 속도다. 다만 공공사업인 만큼 공공주택(임대주택) 비중을 늘려 공공기여(기부채납)를 해야 한다. 이는 도시정비사업의 수익이 되는 일반분양을 줄이므로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을 제한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반대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신통기획을 추진하던 아파트들이 같은 이유로 반대해 실제 사업이 무산되기도 했다.
신통기획뿐 아니라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이 참여하는 공공재개발과 공공재건축 역시 같은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공공지원을 받는 대신 공공기여를 해야 한다. 규제 완화를 통해 공공의 지원을 받으면서 경제적 이익을 다 누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2020년 정부는 공공재개발을 통해 도심 내 4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히고 시범사업 공모를 시작했다. 당시 시범사업에 참여 의사를 밝힌 구역은 총 20여 곳으로 이 가운데 서울 동작구 흑석2구역도 있었다. 흑석2구역은 공공재개발 사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때 일대가 들썩였다.
하지만 지난 5월에 방문한 흑석2구역은 시행착오와 갈등이 존재해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건설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주민들 입장에서 볼 땐 긍정적인 요인이지만 불법 홍보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건설업체에 도시정비사업은 높은 수익성을 담보하는 프로젝트지만 불법 홍보나 과격한 경쟁으로 인해 사업이 지체될 경우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민들은 불법 홍보로 경고가 누적된 건설업체에 대해 입찰자격을 박탈하기로 해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를 기회로 정권 교체를 이룬 윤석열 정부가 지난 8월 16일 ‘국민주거 안정 실현방안’이라는 주제로 첫 주택공급대책을 내놨다. 특히 수요가 많은 지역에 공급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정비사업 관련 규제를 완화한다고 밝히면서 재개발·재건축을 기다리는 이들의 기대는 다시 커지고 있다.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를 완화하고 주민이 구역 경계만 설정하면 정비계획안 없이 정비구역 지정을 요청할 수 있는 ‘정비구역 입안 요청제’를 도입한다. 또 100만㎡ 이하 중소택지의 경우 지구지정과 지구계획수립 절차를 통합하고 정비사업 변경 및 사업인가 시 총회 의결 등 동일 절차를 일괄 처리함으로써 사업 기간은 5~6개월 단축될 전망이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재건축·재개발사업은 의·식·주 가운데 삶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주거’의 문제다.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사업이 천문학적인 돈을 필요로 하는 만큼 경제적 논리를 무시할 순 없겠지만 안전 제일주의와 공정한 절차, 무엇보다 주거생활이 낙후된 주민들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는 근본적 원칙도 잊어선 안 된다.